그렇기에 역사인식의 정치화는 너무나 위험하다.
단지 두 조약 간의 차이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청나라가 인정한다는 내용이 강화도 조약에는 없는데.사태를 악화시킨 청의 개입 청에는 책임이 없었는가? 동아시아에는 수백 년 동안 조공관계가 지속하였다.
해답은 하나에 있지 않다.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조선 무능론만 대비 일본의 군국주의 읽지 못한 조선 청나라의 속국 정책에 크게 반발 대한제국 뒤늦은 개혁정책 한계 학계와 시민사회 인식차 좁혀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던 구한말1894~95년 청·일 전쟁에 종군했던 프랑스 언론인 조르주 비고가 묘사한 당시 한반도 주변 상황.
아무리 이웃 나라 정부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더라도 왕비를 죽이고.그들은 일본의 군국주의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고 청의 위협과 조선 정부의 무능만을 봤다.
연구와 논쟁은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는 사이트가 시민의 역사인식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150년이 지난 현재의 역사가들 역시 이 시기를 평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
일본이 1876년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부터 조선을 식민지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사태를 악화시킨 청의 개입 청에는 책임이 없었는가? 동아시아에는 수백 년 동안 조공관계가 지속하였다.
시모노세키 조약에는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무엇보다도 시모노세키 조약의 1조는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